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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 우주가 있으매> 시그롤드 로그 백업
    오버워치 2021. 3. 15. 00:54

    KPC Siebren de Kuiper (멘쓰)
    PC Harold Winston (농말님)


    *낙원의 개 님이 작성한 COC 시나리오 <그곳에 우주가 있으매> 플레이 로그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플레이 예정이라면 열람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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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 우주가 있으매
     
    w.낙원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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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직.... 치직...
     
    좋아요, 이번 질문은...
     
    치지직...
     
    드 카위퍼 박사님께 드릴게요.
     
    왜 우주로 가시나요?
     
    시브런:누군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산악인에게 치지직...... 왜 에베레스트의 정상으로 가느냐는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죠. 산악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곳에 산이 있기에.
    그래서 우리는 갑니다, 그곳에 우주가 있으니까.
     
    달칵
     
    당신, 실루엣 1호를 기억하는지.
     
    그래요. 5년 전 실종되었던 탐사선 말입니다.
     
    다발적으로 발생하던 블랙홀에서 우리는 실종되었던 실루엣 1호의 신호를 감지했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실루엣 2호를 발사시켰습니다.
     
    당신은 몇몇의 탐사 대원들과 함께 그곳에 몸을 실었었죠.
     
    시브런이 실종되고 몇 번이고 돌려보던 그의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죠?
     
    곧 우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 긴장감, 기쁨......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실종될 줄 알았더라면...
     
    ...
     
    실종된 시브런을 위해서였나요?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자 하는 야욕,
     
    혹은 실종되었던 사람들을 구해 영광스럽게 지구로 되돌아올 때에야 얻을 수 있는 명예와 영광 때문이었나요?
     
    사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윈스턴 박사, 이제 일어나는 게 좋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거든요.
     
    ...
     
    ...
     
    당신이 깨어난 곳은 수면 캡슐 안입니다.
     
    분명히 실루엣 2호가 발사되고 지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블랙홀을 발견했던 기억만은 확실합니다.
     
    그 블랙홀 안에서 실루엣 1호를 발견해 도킹을 시도한 것까지도요.
     
    하지만 그 외의 기억은 희미하기만 합니다.
     
    그저 긴 꿈을 꾼 것 같다는 느낌만 선명해요.
     
    키퍼:지능 판정.
     
    해롤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쉽게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지만,
     
    어깨에 약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탐사대원 중 한 명이 손을 뻗어 당신을 캡슐 안으로 밀쳤던 것 같습니다.
     
    긴 잠을 잔 것처럼 온몸이 뻐근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지구에서 맞이하던 검은 밤처럼
     
    탐사선 안은 고요하군요.
     
    총 여덟 개의 캡슐,
     
    동그랗게 난 창문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창 밖은 우주의 별빛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왜, 어쩌다가 이렇게 혼자 남게 된 거죠?
     
    해롤드:....(다른 캡슐은? 바로 옆 캡슐을 살핀다)
     
    총 여덟 개의 캡슐이 줄지어져 있는데...
     
    가동되고 있던 것은 오로지 당신이 잠들어있던 캡슐 뿐이었군요.
     
    다른 캡슐은 검은 화면으로 꺼져 있는 반면,
     
    당신이 누워있던 곳에서 작게 난 화면을 보면
     
    00:00이 적혀 있습니다.
     
    타이머를 설정해뒀던 것 같네요.
     
    그 외 다른 수면 캡슐에서 살펴볼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해롤드:(동그랗게 난 창문을 살펴본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
     
    우주가 이렇게 새까만 곳이었나요.
     
    키퍼:관찰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렇죠. 우주는 본래 이렇습니다.
     
    이 광활하고 까만 우주 속에서 한낱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억하고 있지 않나요?
     
    실루엣 2호에 탑승했을 때만 해도 조종실 화면 가득히 들어찼던 지구별의 환한 불빛,
     
    반짝이는 작은 별, 떠다니는 우주의 먼지들을.
     
    그런 것치고 당신이 바라보는 우주는.....
     
    무서우리만치 새까만 어둠뿐입니다.
     
    이렇게 까만 우주는 정말 처음입니다.
     
    어쩌면 창이 작아 당신의 시야가 극히 제한된 걸지도 모릅니다.
     
    창에 비치는 건, 희미한 당신의 잔상과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뿐이군요.
     
    나가보는 게 좋을까요?
     
    밖으로 나가면 동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해롤드:(밖으로 나간다!)
     
    당신이 막 문을 열려고 할 때,
     
    수면실의 조명이 조금씩 깜빡이기 시작합니다.
     
    일정한 안내음으로 방송이 들려옵니다.
     
    해롤드:...?
     
    탐사대원 해롤드 윈스턴님, 오랜만입니다.
     
    해롤드님의 환경을 자동 조성, 전력 모드를 교체합니다.
     
    기계들의 가동이 멈추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위가 순식간에 깜깜해집니다.
     
    아, 아까 당신이 바라보았던 창밖의 풍경과 별다를 게 없는 곳이 되어버렸네요.
     
    선체 스위치를 눌러봐도 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신의 손목에 달린 라이프워치가 깜빡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비상 랜턴이 가동될 것 같은데요?
     
    해롤드:(버튼을 눌러본다)
     
    라이프워치를 작동시키면 불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하지만요,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는 라이프워치 불빛에만 의존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관리실에서 불을 켜는 게 좋을까요?
     
    가장 급선무인 일은 해롤드, 당신이 복도로 나가는 일이라는 겁니다.
     
    해롤드:(문을 열고 나갈 수 있나? ) (열어본다)
     
    문이 옆으로 열리면,
     
    역시나 캄캄한 어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아요.
     
    이 전체가 공허한 우주가 된 것처럼....
     
    설마 해롤드, 여기에 혼자 남게된 걸까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키퍼: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키퍼:1 감소합니다.
     
    잠깐만요, 어둠에 잡아먹혀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복도 끝에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키퍼:듣기 판정.
     
    해롤드: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dk..
     
    잘못 들었나요? 멀리서부터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걸음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그 끝에 서 있는 건,
     
    시브런?
     
    휴대용 랜턴을 들고 있는 시브런입니다.
     
    시브런:오랜만이군, 윈스턴 박사.
     
    맙소사, 정말 시브런이에요.
     
    지구에서 들었던 구조 신호는 정말 그가 보냈던 겁니다.
     
    시브런이 살아있다니.
     
    그가 살아있길 얼마나 빌었는지.
     
    게다가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말을 붙일 수 있는 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집니다.
     
    해롤드:시브런, ... (정말 시브런인가?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몇번씩 확인하고) 괜찮은거야?
     
    시브런:(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유감이네. 그래도 나는 아주 괜찮은 상태야. 안부를 물어야 할 건 내쪽이겠군. 해롤드, 오래 잠들어있어서 허기가 질거야.
     
    실제로 그렇습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금방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롤드:(여전한 미소에 저도 같이 웃어보이며 한시름 놓았다.) 아, (머쓱함에 손으로 배를 가리고) 그러게. ... 나는 괜찮아. (뭔가 먹을게 있을까?)
     
    시브런:(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식사실로 가도록 하지. 이야기는 가면서 해도 충분할거야.
     
    해롤드:그것도 좋겠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도 궁금하고.... 알려 줄 수 있어? ...혼자서 계속 여기 있었던거야? (이렇게 어둡고 외로운 곳에서 5년의 시간을...)
     
    시브런:(네 손을 잡고 식사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일이라...보는 바와 같네. 모두 블랙홀에 집어삼켜졌지. (눈치를 보듯 흘끗) ...자네가 탄 탐사선까지 말이야. 그래, 혼자였지. 삼켜지고 실루엣 2호가 도킹을 시도할 때까지가 5개월, 그리고 자네가 잠들어있던 5개월. 합치면 10개월 정도 혼자 있던게 되겠군.
     
    잠깐, 5개월이요?
     
    실루엣 1호의 탐사대원들이 실종된 지는 5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었나요?
     
    아, 문득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르죠.
     
    당신이 탐사선에 탑승하기 직전까지 수없이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 않나요?
     
    하지만...
     
    당신이 5개월동안 잠들어 있었다고요?
     
    그렇다면 왜? 어째서?
     
    수없이 많은 의문이 당신의 머리를 지배합니다.
     
    키퍼: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키퍼:1 감소합니다.
     
    해롤드:... 내가 잠들어 있는 걸 알았어? 왜... 깨우지 않은거야? 10개월의 시간을 혼자서, 지낸거잖아.... 내가 일어나지 못한건가? (네 말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무슨일이 있었던거야 시브런.)
     
    시브런:(상냥하기도 하지, 네 다정함에 미소라도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잡은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는다.) 상황이 좋지 않았네. 이곳에서 자네가 5개월이나 버티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깨우지 못했어.
     
    해롤드:그러는 너는 힘들지 않았어? .... 가끔보면 넌 이기적이건지, 착한건지 모르겠어. (곰곰히 무언가 생각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엔 우리 뿐인거야? 너도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나도...나도 그렇고.
     
    시브런:내가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을걸세.(어깨를 으쓱하고 따라서 고개를 돌려 이미 다 알고있는 내부를 둘러본다.) ...실루엣 1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안에서 실종됐어. 2호 탐사대원들 역시 실종된 것으로 아네. 그런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군. (뜸을 들이다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대개 설명하기 어려운 법이지. 그 일부라도 설명하는게 우리의 일이지만...
     
    해롤드:괴짜같은 면이 있긴하지만 착한것도 사실인걸. 아...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찾을 수 있을거야. 그사람들이 가봤자 어딜 갔겠어. 이 안에서 사라진거라면 잘 찾아보면... 나왔을텐데. (하지만 네가 10개월 동안 찾아보지 않았을까? 정말로 감쪽같이 사라진건가..) 그래서 혼자서 뭔가 얻어낸건 있었어? 돌아갈 방법이라거나, 실종의 원인이라거나...
     
    시브런:괴짜같은건 인정하는군. 이 괴짜 박사가 10개월동안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네. 간단하게 설명해볼까. 우선, 이곳은 블랙홀의 안이야. 5개월에 한 번, 블랙홀이 지구 근처에 생기는 것으로 추정되네. 자네가 타고 온 탐사선이 우리를 발견한건 우리가 이곳에 빨려든 지 딱 5개월째였기 때문이지.
    블랙홀이 다시 지구 근처에 생길 때 탐사선에 남은 전력을 끌어모아 비상 로켓을 가동시킬거야. 지금부터 이틀 뒤면 딱 5개월이 된다네.
     
    해롤드:...! 그럼 그 이틀동안 빨리 다른 동료들을 찾자. 다같이 돌아갈 수 있을거야. (조금 목소리가 높아지며 이야기를 하다가 우뚝, 멈춘다.) ...설마, 비상 로켓에는 두 사람 밖에 탈 수 없어, 같은 말을 할건아니지? 대원들도 함께 나가야해. 나는... 아니, 우린 그러기 위해 온거고...
     
    시브런:아니, 그런 문제는 아니야.(조금 당황한듯 손을 내젓는다.) 글쎄, 로켓에야 꽤 많은 수가 탈 수 있겠지만...실종된 대원들을 찾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몇 걸음 더 가다가 문득 생각난 듯 멈춰선다.) 아, 그리고. 비상 로켓에 필요한 전력 때문에 전기를 아껴야 해. 다행히 실루엣 2호가 도킹을 시도해준 덕에 비상 로켓을 가동시킬 수 있는 전력이 조금 생겼어. 이틀 뒤까지 쓸모없는 전력을 차단시켜야 하니 혹시 작동 중인 쓸모 없는 기계를 보거든 전기회로를 끊어주면 고맙겠군.
     
    아, 그러고 보니 라이프워치가 환경을 자동으로 조성했었죠.
     
    전기가 부족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네요.
     
    해롤드:아.. 다행이다. 정말로... (네 말에 조금 안심한 듯 한숨을 쉬곤) 응, 할 수 있는게 있으면 뭐든지 도울게. 이틀 뒤에 꼭 돌아가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지구에서는 벌써 네가 없어진지 5년이나 지나버렸으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요.
     
    키퍼:관찰력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문득 시브런이 실종되기 전에 수없이 보았던 방송을 떠올립니다.
     
    시브런이 우주에 가는 이유에 대해
     
    '그곳에 우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그 방송을요.
     
    당신은 시브런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곧장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닫습니다.
     
    아무리 지구와 우주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말이죠,
     
    시브런에겐 시간이라는 게 적용되지 않은 것처럼...
     
    그때와 다름없는 얼굴입니다.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지네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시브런의 뒤를 따릅니다.
     
    불이 꺼진 복도에 저벅거리는 둘의 발걸음 소리와
     
    시브런이 들고 있는 휴대용 랜턴이 겨우 앞을 밝히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몇 걸음을 더 걸었을까요.
     
    어둠이 있기에 처음 탑승할 때보다 훨씬 더 긴 길이의 복도.
     
    그곳을 지나 당도한 곳은 식사실이라고 적힌 문 앞입니다.
     
    문이 옆으로 열리면,
     
    역시나 캄캄한 어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브런은 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상태로 식탁 앞에 앉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니 식탁 위로 각종 우주식량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옵니다.
     
    치약 튜브 형태의 치킨퓌레와 통조림 형식으로 된 훈제연어요리, 생식바와 팩에 들어있는 사과주스군요.
     
    시브런은 어서 앉으라는 듯 자리에 앉아 고갯짓을 합니다.
     
    해롤드:(네 고갯직을 따라 자리에 앉는다, 우주식량을 몇번 만지작 거리면 네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이 위화감은 대체 뭔지...) 어쩐지 으스스하다. 전기를 킬 수 없으니 그런가봐. 하하.
     
    시브런:(사람도 둘밖에 없으니 더. 굳이 말은 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네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해롤드:어, 응? 아 아니 그냥. 오랜만에 보니까 좋아서. (사과주스를 따 쪽, 빨아들였다.) 너도 먹어. 누가 먹을때 같이 먹어야지. 나중에 배고프면 안되잖아.
     
    시브런:실없긴...뭐, 나도 자네를 오랜만에 보니 좋아. 식사라면 이미 했네. 기다렸다가 함께 할걸 그랬어. 까맣게 잊고있었지 뭔가.
     
    이 어둡고 삭막한 공간에서의 식사라니.
     
    식사실에 뚫려있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아도 빛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되는 걸까요.
     
    동료들은 모두 죽은 걸까요?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상한 불안감과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해롤드, 당신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불안입니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한낱 미물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잖아요.
     
    해롤드: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배가 고파질지도 모르니까 몇개는 챙겨가자.(이곳이 블랙홀의 안쪽이었기에 이리도 어두웠던건가. 주스를 다마시고 쪼그라 들고나서도 멍하니 그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시브런:그것도 좋겠군.(버튼을 몇 번 꾹꾹 눌러 생식바를 몇 개 더 꺼내 건네준다.) 이틀 먹을 식량은 충분하니까 걱정은 말게. ...아. 그렇지. 음...(눈동자를 눈치보며 조금 굴리다가) 내가 떠난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지는군. 답해줄 수 있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좋아. 나참, 내가 사람이 꽤 그립긴 했나보군.
     
    해롤드:(네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생식바를 뜯어 한입 먹는다.) 음. ... 일단 지구에서는 5년의 시간이 흘렀어. 너에겐 10개월의 시간이라 느껴졌겠지만. (손가락을 모두 펼쳐 보이며 우물우물 생식바를 삼켰다.) 그래서 사실... 사실은 네가 죽었을거라고 생각했어. ...미안해. 그렇지만 그렇게 오랜시간이 지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 그래도 우리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만큼은 믿어줘. 5년만에 네가 보낸 신호를 받고 우리가 온거야. 그리곤.. 현재 상황이고.
     
    시브런:5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군. 그래, 그럴 수 있겠어. 흥미롭군. 미안해할 것 없네. 5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미묘한 표정을 내보이고는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뭐, 굳이 우울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 5년동안 무얼 하며 지냈나? 연구는 잘 되어가고? 그, 유전자 조작 고릴라를 달에 보낼 연구를 하고 있었지 않나.
     
    해롤드:아, 그렇지. 그 아이는 여전히 바깥에 관심이 많아. 나중엔 질릴정도로 볼 수 있을텐데. 여전히 내 안경을 뺏어가서 매일 혼이나지. ...잘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는걸. (조금 기분이 나아진듯 가볍게 웃어보였다.) 맞아, 여기 오기 3주 전엔 또 해먼드 녀석이 탈출을 시도해서 애먹었어. 단기 조사차 나간 로켓에 포드를 걸어서 따라 나가려 하지 뭐야? 하하, 정말이지...
     
    시브런:(와르르 쏟아지는 말에 즐겁게 웃는다.) 그렇군, 즐겁게 지낸 모양이네, 다행이야. 이틀 후면 돌아가서 볼 수 있을텐데,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할 필요는 없지. 즐거운 이야기가 또 뭐가 있을까...아. 식사는 끝났나?
     
    해롤드:즐겁긴했지만 그래도 네가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어. 정말... 갑작스럽게 사라졌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어서 기뻐. (멋쩍음에 볼을 긁적이며 널 보고 웃엇다.) 응, 적당히 배는 채운 것 같아. (생식바와 남은 통조림을 주머니에 챙겼다.)
     
    시브런:(대답은 않고 씩 웃으며 너를 보며 식탁 위 버튼을 누른다. 음식의 잔해들이 식탁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흘끗 보고, 다시 너와 눈을 맞춘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해롤드, 지루하겠지만 앞으로 이틀만 참아주게. 블랙홀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자네를 믿지만 그냥...노파심에 말하는거야.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고, 아까 부탁한 것만 잘 들어주면 충분해.
     
    이틀.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모두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겠죠.
     
    그런데...정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일까요?
     
    기분 탓인지 시브런의 말이 이상한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시브런:아, 자네 방은 깨끗할거야. 수면 캡슐은 아무래도 자는 데 불편하니까 앞으로는 자네 방에서 자도록 하게.
     
    해롤드:어... 응? ...알았어. 이틀정도야 지루한건 상관 없지만 내가 도울게 없을까? 혼자서 할 수 있어? (어딘지 모르게 묵직한 말에 조금 긴장했다.)
     
    시브런:그래. 혼자 지내면서 큼직한건 이미 다 해버렸거든. 자네는 쓸데없는 전기회로만 끊어주면 돼. (자리에서 일어나 식사실 문을 연다. 먼저 나가라는 듯 바라본다.) 이만 일어날까. 나는 비상 로켓을 정비할테니 들어가 쉬게. 오래 자서 몸이 꽤 뻐근할텐데.
     
    해롤드:알았어. 혼자 너무 많은일을 했을걸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지네. 하하... (긁적이다) 응. 혹시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고. 내가 자고 있어도 필요하면 꼭 깨우고. 알았지? (자리에서 일어나 널 따라가더니 손가락을 튕겨 네 이마를 톡 쳤다.) 혼자 다 하려고 하지마. 시브런. 이젠 나도 있으니까.
     
    시브런:뭐, 남아도는게 시간이었는데...(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웃는다.) 필요하면 꼭 부르겠네. 걱정말게.(손을 흔들고 먼저 복도로 사라진다.)
     
    오늘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시브런이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전기를 채 끊어내지 못한 기계가 있다면 도움을 달라고 하지 않았었나요?
     
    나중에 마주했을 때 당신을 질책한다면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인 일입니다.
     
    식사실에서 빠져나오면 다시금 검고 긴 복도와 마주합니다.
     
    라이프워치의 불빛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라이프워치의 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복도를 걷다보면,
     
    손목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열 걸음 앞 도킹을 성공한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습니다.
     
    어둠 속을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1호로 이어지는 통로 앞까지 온 듯 합니다.
     
    통로로 이어지는 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키퍼:관찰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행깍...행깍...)
     
    키퍼:(그럽시다)
     
    문 너머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해롤드:(휴!)
     
    한동안 오갔던 사람이 없는 것처럼요.
     
    문은 라이프워치에 새겨진 탐사대원 정보를 인식해 열 수 있는 구조군요.
     
    이 문을 연다고 해서 큰일이라도 생길까요?
     
    늘 실루엣 1호의 행방과 상태, 그 안에 탔던 탐사대원들이 궁금했었죠.
     
    어쩌면 시브런까지도요.
     
    지구 사람들 모두 품었던 의문이었습니다.
     
    인간은 늘 그런 호기심으로 움직이지 않았나요?
     
    블랙홀 안에서도 이어지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도 지구로 돌아가면 분명 연구대상이 되기 충분하겠죠.
     
    그러니까 당신이 이 연결통로 너머의 실루엣 1호를 궁ㅇ금해하는 것도,
     
    평범한 지구인이라면 늘 갖는 호기심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해롤드:(음음, 난 잠깐 확인만 하는거야. 확인만... 라이프워치를 인식시켜본다.)
     
    음성이 들려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의 정보를 분석 중....
     
    .........
     
    ......
     
    ...
     
    탐사대원 해롤드님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잠깐,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고요?
     
    이 말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당신의 출입을 막아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키퍼:지능 판정.
     
    해롤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곳에 갇힌 사람들이라면...당신과 시브런 뿐입니다.
     
    아무래도 당장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돌아가는 것이 최선일 듯 합니다.
     
    해롤드:... 나중에 한번 물어볼까? (물어보는것 정도는 괜찮겠지..) (다른곳으로 돌아간다)
     
    연결 통로에서부터 뒤돌아 얼마 걷지 않으면 희미한 소리를 듣습니다.
     
    이건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죠?
     
    시브런의 목소리도 아닌 것 같은데요...
     
    키퍼:듣기 판정.
     
    해롤드: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아, 노래입니다.
     
    정확하게 들리진 않지만 정면 정보실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건 확실합니다.
     
    시브런과 당신 말고 남은 사람이 있는 걸까요?
     
    정보실 문은 열려있습니다.
     
    빨갛게 점멸하는 불빛이 복도 쪽으로 희미하게 비춥니다.
     
    분명 전기가 연결된 기계가 있다는 말일 텐데요.
     
    정보실로 들어서면 노래는 더 확실하게 들려옵니다.
     
    Am I floating in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언젠가 꾸준히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입니다.
     
    이 실루엣 2호를 함께 탔던 탐사대원 중 한 명이 흥얼거리며 자주 불렀던 노래였죠.
     
    뚝,
     
    노래가 그칩니다.
     
    빨간 빛으로 점멸하는 라디오가 보이는군요.
     
    정면 대시보드 위엔 종이파일이 보입니다.
     
    해롤드:(종이파일을 살펴본다)
     
    당신과 실루엣 2호를 함께 탔던 탐사대원들의 정보가 기입된 종이를 묶어놓은 파일입니다.
     
    종이 위에는 모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페이지도 몇 있는 것 같아요.
     
    장, 탐사대장입니다.
     
    어깨가 딱 부러지고 엄한 얼굴을 한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동료에 대해서는 한 없이 큰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죠.
     
    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었던 그 순간조차 당황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키퍼:지능 판정.
     
    해롤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해롤드 당신을 수면 캡슐로 밀쳤던 이가 다름 아닌 대장이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아주 급박해 보이는 표정이었던 게...
     
    왜 이제야 떠올랐죠?
     
    왜 대장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네프스키,
     
    당신이 기억하기론, 매번 노래를 흥얼거리는 탐사대원 중 하나였죠.
     
    그래요, 이곳에 들어오면서 들었던 노래를 알게 된 것도 바로 네프스키 대원 덕분이었습니다.
     
    대원들의 정보가 적힌 종이들을 가만 바라보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입니다.
     
    사진이 종이에 잘 붙어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이제 한없이 희미해질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이 인식하지 못한 새 5개월의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며...
     
    2호의 탐사대원들과 1호의 탐사대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해롤드:.... (라디오를 살펴본다)
     
    노래는 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것 같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가적인 기계들과 그 가운데 달린 라디오만 여전히 빨간 빛을 뿜고 있습니다.
     
    뒤에 달린 콘센트로 전기를 연결해 작동하는 물건이군요.
     
    여러 개의 스위치가 보이고,
     
    툭 튀어나온 버튼을 돌리면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 듯 합니다.
     
    키퍼:지능 판정.
     
    해롤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런데 말이죠,
     
    이런 크고 거추장스러운 기계를 정보실에 들였던 적이 있던가요?
     
    곰곰 생각해봐도 누군가 사용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해롤드:...흐으음... (튀어나온 버튼을 건들여 주파수를 맞춰볼수 있나?)
     
    주파수를 맞추면,
     
    몇 번이나 노이즈가 낀 소리가 치직거리며 울려퍼집니다.
     
    희미하게 당신의 모국어가 들려옵니다.
     
    가만 내용을 들어보면 일기 예보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희미해서 온전히 듣기가 어렵네요.
     
    해롤드:(귀를 기울여 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네요.
     
    해롤드:끄응. 전원 버튼은 어디있지? (이것저것 꾹꾹 눌러본다)(설마...터지기야하겠어?)
     
    버튼을 누르자 아까 들려왔던 노래가 한 번 더 재생됩니다.
     
    키퍼:듣기 판정.
     
    해롤드: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아까 전에 들었던 노래가 한 번 더 들려옵니다.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없네요.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가 왜인지 익숙하다는 것 말고는요.
     
    문득 시브런이 부탁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틀 뒤에 지구 근처에서 생길 블랙홀과 그 블랙홀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 로켓을 작동시키기 위해선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고 했죠.
     
    어떻게 할까요, 해롤드?
     
    해롤드:(뒤에 달린 콘센트를 뽑는다)
     
    당신은 이 거대한 기계의 전기를 끊기로 합니다.
     
    뒤로 연결된 콘센트를 뽑기 전,
     
    또 다시 희미하게 노래가 흘러나왔던 것 같기도 하네요.
     
    And there's nothing I can do……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그 노랫말이 마치 당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 같아요.
     
    그러나 모든 건 기분 탓이겠죠.
     
    이로써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에 한 걸음 가까워진 셈입니다.
     
    라디오에는 더 이상 불이 들어오지 ㅇ낳습니다.
     
    (않..습니다...)
     
    이제 나갈까요?
     
    해롤드:(나가자)
     
    당신이 막 정보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라디오 앞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요?
     
    해롤드:(주워본다!)
     
    이건...라이프워치네요.
     
    자세히 살펴보면,
     
    라이프워치에는 Nevsky 라는 이름과
     
    xx8 라는 탐사대원 넘버가 작게 각인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게 왜 떨어져 있는 거죠?
     
    라이프워치를 작동시키려고 하면 음성이 들려옵니다.
     
    Nevsky 님의 정보를 분석합니다.
     
    ......잘못된 접근입니다.
     
    올바른 라이프워치인지 확인해주세요.
     
    당사자가 아니면 라이프워치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죠.
     
    등록된 생명체의 정보만 인식이 가능한 구조니까요.
     
    당신은 빛을 내는 자신의 라이프워치를 바라봅니다.
     
    라이프워치 화면 위에 현재 시각이 표시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군요.
     
    해롤드:(이걸로 실루엣 1호를 확인할 수는 없을까 고민...)
     
    지구는 지금 몇 시쯤일까요?
     
    오랜만에 몸을 움직인 탓인지 그저 피곤하기만 합니다.
     
    당신의 방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 해롤드.
     
    해롤드:(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내일 확인해 봐도 괜찮겠지. 방으로 돌아갑니다)
     
    복도를 조금 더 걸으면 당신의 방에 도달합니다.
     
    아주 잠깐 비웠던 것 같은데도 안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공기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마치 오랫동안 발자취가 끊겼던 방을 마주하는 것처럼요.
     
    작은 책상과 의자, 침대와 책장까지 그 자리에 모두 그대로 있네요.
     
    먼지가 쌓이지 않은 것을 보면 시브런이 당신의 방만은 잘 관리해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방을 살피고 있던 찰나,
     
    시브런이 방으로 들어옵니다.
     
    시브런: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워서. 잘 거라면 함께 자도 괜찮겠나?
     
    해롤드:시브런?
    아, 음... 방도 깨끗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들어와.
     
    시브런이 익숙하게 침대 맡에 걸터앉습니다.
     
    당신이 긴 잠을 자고 있는 사이 여러 번 이 방에 들어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요.
     
    당신과 시브런은 두 명이 눕기에는 비좁지만 한 명이 눕기엔 넓었을 침대에 나란히 눕습니다.
     
    라이프워치에 희미한 빛이 아니면 서로의 얼굴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이곳은 끝없이 어둡군요.
     
    시브런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합니다.
     
    시브런:이렇게 사람과 마주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당신은 비록 잠든 채 5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시브런은 벌써 10개월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셈입니다.
     
    해롤드:.... (힘들었겠지. 눈앞의 네 얼굴을 찬찬히 쓸어주었다.) 미안해. 조금 더 일찍 깨어났어야 했는데.
     
    시브런:(그 온기를 느끼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작게 미소짓는다.) 자네가 깨어나길 기다리긴 했지. 나는...내 생각보다 조금 더 외로웠던 것 같거든. 미안해할건 없네. 깨우지 않은 것도 나니까.
     
    해롤드:이제 괜찮아. 이틀뒤면 지구로 돌아갈 거고.. 거긴 널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을 거야. 혼자둬서 미안해. 외로웠지. (무슨말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그런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브런:(눈을 살짝 떠 너를 빤히 보고, 다시 웃으며 감아버린다.) 자네가 이 일의 원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다시금 눈을 떠도 여전히 보이는 그 눈동자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웃으며 양손으로 네 두 뺨을 감싼다.) 나야말로 미안한걸, 홀로 남아서 자네까지 이런 곳에 휘말리게 만든 것 같아서. 그러니 서로 사죄하지 않기로 하지. 이미 지나간 일이잖나.
     
    해롤드:(제 뺨을 잡아오는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렸다. 천천히 그 손을 쓸어내리고) 그래. 지금은 남은 미래를 보자. 너 때문에 휘말린게 아니야, 내가 선택해서 탐사대원으로 자원한거고, 내 선택으로 널 찾으러 온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마. 지나간 과거에 사죄 하지말자. 이렇게 다시 만난 것부터 조금씩 나아가는거야.
     
    시브런:(단어 하나하나에 뚝뚝 묻어나오는 다정함을 새겨두고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말을 꼼꼼히 새겨듣는다.) 그래야겠지. 그럼 사죄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할까. 나를 찾으러 탐사선에 올라주어서 고맙네. 외롭지 않게 함께 해주어서 고맙네. 그리고 내게 그런 말을 건네주어서 고마워. 자네는, 참 다정해.
     
    해롤드:널 다시 만나서 다행이야. 만약 만나지 못하고 홀로 깨어났다면 정말 외로웠을 것 같거든. ... 지금이라도 너에게 다정함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네 머리칼을쓸고, 손을 천천히 움직여 네 눈과 콧잔등, 입술을 따라 내려갔다. 어둠속에서 손끝으로 네 얼굴을 하나하나 담기라도 하겠다는듯, 제 손으로 얼굴이 닿자 그제야 정말로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와닿는다.) 꿈이아니구나, 꿈이 아니야. 네가 정말 살아있구나.
     
    시브런:(제 얼굴을 만지는 손을 가만히 느끼며, 한참은 느껴보지 못했을 그 작은 감각에 가만히 집중한다. 살아있구나, 그 단어를 들으며 비로소 멈춰있던 제 손을 움직여 마찬가지로 네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려간다. 자신과는 무척이나 다르게 생긴 상이다. 그것이 그토록 벅차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 그리고, 나는 다른 이와 함께 있군. 이것도 꿈이 아니야. 여기에 자네가 있어. (자네가. 한 번 더 작게 중얼거린다.)
     
    해롤드:네가 없는 5년 동안, 분명 주위로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네가 없기때문에 외로웠어. 너는 여전히 그 넓은 우주를 항해하고 있을텐데, 난 그 아래서 우주를 보며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는것 밖에는 할 수 없었지. ...이 기회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몰라. (놓치고 싶지않아, 작게 말하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감았다 떠도, 똑같이 어둠 속이지만 이젠 네가 있다. 네가 여기에.) 신호를 보내줘서 고마워.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시브런:(네가 눈을 깜빡이는 것에 맞추어 따라하듯 한 번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눈동자를 마주하고, 가만히 네 말을 듣는다. 놓치고 싶지 않아, 그 말을 함께 되뇌인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너를 짧게 끌어안고 놓아준다. 무엇을 말해야할까, 한참 고민하며 네 팔을 붙잡고 있다가 겨우 말을 꺼낸다.) 지구로 돌아가면...내 앞에 있는 자네도 일상이 될테지. 이 평범한 것이 오늘만큼은 특별하게 와닿는 것이 꽤 즐겁네.
     
    해롤드:(가만히 전해져 오는 네 온기를 느끼곤 안심했다. 네 모든 행동들이, 나의 생각에서 나온 환상이 아니라, 네 의지로 나온 그 행동들이 저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응, 돌아가면... 그녀석들이 또 얼마나 사고를 쳐놨을지 상상도 안 가. 또 뭔갈 부숴놨겠지? 해먼드 녀석은 탈출을 계획하면서 이상한 것들을 만들어 냈을거고. ... (모든것이 평범한 일상이다. 익숙했던 일상들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그리고 그곳엔 네가 있다.) 같이 가자. 반가운 일상이 그곳에 있어.
     
    시브런:(같이, 라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일상을 상상하듯 눈을 감고 미소짓는다.) 같이, 그래야지. 함께 가야 해. 내가 없는 사이 학계는 또 얼마나 새로운 발견을 했을지 모르겠군. 돌아가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을 토블슈타인 박사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만 같아. (그 사이에서 예의를 차리고 있을 너 또한. 웃으며 잡던 손을 불편할까 싶어 놓아준다.) 이런, 안그래도 좁은 침대에서 너무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 같군. 이만 잘까, 못다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할 시간이 많을테니.
     
    해롤드:5년 간의 공백을 채우려면 밤낮을 새워가며 논문들을 읽어봐야할거야. 하하. 너라면 할 수 있을것같지만. (네 웃음에 저도 함께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제 손을 놓는것을 다시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렇게 있자, ... 놓지 말자. ... 가지마. 이걸 놓으면, 네가 사라져도 알지 못하잖아. (내심 네가 떠날것을 두려워 하고 잇는 것인지. 손을 깍지껴 잡았다.)
     
    시브런:(사뭇 놀란 것인지 눈을 크게 뜬다. 이내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네가 좋아서, 그래서 웃고 싶고, 나를 붙잡아주는 것이 어쩐지 서글퍼서, 그래서 울고 싶고...그래서 그 손을 더 힘주어 잡는다. 놓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듯이.) ...내가 하고 싶던 말을 그대로 하는군. 놓지 않을거야. 나 또한 자네가 사라질까 두렵네. 간신히 잡았잖나, 서로를.
     
    해롤드:... 그렇게 말해놓고 놓으면 화낼거야. 나 화 잘 안내는거 알잖아. ...이번엔 정말로 화낼거야. ... 과거의 사고야 네 의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 손을 놓는건 네 의지로 놓는거니까. (단호하게 말하며 빤히 바라보았다.) 자기 싫네. ... 왠지 모르게 불안해서. ...네가 옆에 있는데도 왜 이렇게 불안한건지 모르겠어. 오히려 너를 이렇게 다시 만났기때문에 그런걸까. ...
     
    시브런:겁이라도 먹어야 하나? 하하...놓지 않아. 그러지 않을거야. 자네가 불안한건 이곳이 그럴만한 장소이기 때문이겠지. 그럴 수밖에 없어. 블랙홀 안에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니, 더군다나 이토록 그리워하던 이와 함께 말이야.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그러나 이건 분명 현실이지. 괴리감이 들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너무 걱정은 말게. 이러다 자네답지 않게 될 일도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아.
     
    해롤드:그런걸까? ... 괜한 걱정을 하는걸까. .. 응. 널 믿을게. 네 말대로 이렇게 걱정만 하다간... 할 수 있는것도 놓치게 되겠지. 내일을 위해서 자야겠어. 잠은...안오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언젠가 잠들겠지. 네가 옆에 있어서 나른하기도 하고. (꼼지락, 네 손을 만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절대로 가면 안돼. 시브런.
     
    시브런:(함께 눈을 감으며 간지럽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걱정 말게,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하게 잠들테니. 편히 자게, 해롤드.
     
    ...
     
    10개월.
     
    그것이 지구에서의 시간과 다른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당신 또한 홀로 남았다는 그 무서운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매번 실루엣 1호의 미스테리한 행방과 온갖 것에 대해 떠드는 방송 영상들을 보면서,
     
    빛이 있고 마땅히 서있을 수 있는 땅이 있음에도 지구는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제대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주를 쫓는 일이란 늘 그런 법이니까요.
     
    그래요, 다행이라고 여겨도 좋아요.
     
    그나마 시브런이 있기에 이 막연한 외로움과 불안감을 견딜 수 있는 거겠죠.
     
    시브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탐사대원 해롤드님, 자동으로 수면 환경을 조성합니다.
     
    라이프워치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느 정도 방을 밝히던 불빛이 사그라들고,
     
    시브런의 얼굴은 정말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어둠에 집어삼켜지네요.
     
    불현듯,
     
    이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도
     
    맞닿은 시브런의 몸이 지나치게 차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우주에 붕 떠있기라도 한 것처럼 졸립고 나른해집니다.
     
    그렇게 긴 잠을 잤는데도 불구하고...
     
    ---
     
    문득 잠에서 깨어납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일까요.
     
    수면 캡슐 안에서 굳었던 몸이 조금은 풀어진 듯 합니다.
     
    눈을 떠도 시간을 구분할 수 없는 까만 풍경이 당신의 시야에 들어찹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수면에서 기상으로 상태가 변경됩니다.
     
    활동 환경을 자동으로 조성합니다.
     
    당신의 라이프워치에서 옅은 불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나마 주변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의 빛이 생겼군요.
     
    그러고 보니 함께 자리에 누웠던 시브런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시브런은 어디에서 묵고 있는 거죠?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통로를 닫아둔 것을 보면 그 너머에서 묵고 있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사라진 탐사대원들의 어느 방이든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방에서 빠져나오면 관리실 쪽에 작은 불이 들어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리실에서는 실루엣 2호의 대부분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죠.
     
    복도를 옅게 밝히던 빛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비상용 랜턴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상 위 컴퓨터와 휴대용 랜턴화분,
     
    상단과 하단 두 개로 구분된 철제 서랍장이 눈에 띕니다.
     
    해롤드:(휴대용 랜턴을 들고 서랍장을 살펴본다)(상단부터)
     
    휴대용 랜턴은 건전지를 아낄 생각인지 가장 낮은 1단계로 맞춰져 있지만
     
    어둑어둑한 주변 탓에 이 정도의 불빛은 그 어떤 것보다도 밝게 느껴집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당신이 막 수면캡슐에서 깨어났을 때 시브런이 들고 있던 랜턴과 동일한 물건인 듯 합니다.
     
    상단 서랍장을 열어보면,
     
    무수히 많은 라이프워치가 있습니다.
     
    열 개, 아니에요.
     
    눈으로 셈해도 스무 개 이상의 라이프워치가 가득합니다.
     
    관찰력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라이프워치에는 실루엣 2호에 함께 탔던 탐사대원들의 라이프워치 뿐 아니라
     
    1호에 탔던 탐사대원들의 라이프워치까지 가득합니다.
     
    새겨진 각인과 코드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잠깐만요,
     
    하지만 그들은 실종되었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1 감소합니다.
     
    이렇게 많은 라이프워치가 있다면, 혹시나......
     
    해롤드:... (곰곰히 생각하다가 시브런의 것도 있을까?)(뒤적)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
     
    그의 라이프워치에는 그의 이름과 코드 No.003 가 새겨져 있네요.
     
    쓸모가 있을까요?
     
    해롤드:(인단...챙겨 볼까? 워치를 챙기고 아래 서랍을 살핀다)
    (일단)
     
    충전용 배터리가 한가득 들어있습니다.
     
    아무래도 전력을 모두 사용한 배터리들만 넣어둔 것 같은데요.
     
    무슨 용도로 사용하는 건지 알 수 없네요.
     
    전기로 작동되는 것이긴 하나
     
    지구에서 이와 비슷한 모델을 본 적은 없습니다.
     
    해롤드:(가벼운 배터리를 몇번 흔들어 보곤 전력이 다 된것 같아 내려 둔다.) 음... (컴퓨터를 살펴 보고)
     
    계기판과 연결된 커다란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에 이어진 전기까지 끊지 못한 이유라면,
     
    아무래도 이 기계 하나로 실루엣 2호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는건 잘만 조작하면 당신의 출입이 통제된 실루엣 1호의 연결통로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겠죠.
     
    탐사대원님의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안내음이 흘러나옵니다.
     
    해롤드:(자신의 이름을 입력한다.)
     
    계기판에 깜빡이는 불빛이 연이어 들어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은 현재 실루엣 1호 연결통로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해제를 위해 통제 관리자의 코드를 입력해주세요.
     
    해롤드:(관리자...면, 시브런이겠지?) (003을 입력해본다)
     
    다시 한 번 안내음이 울려퍼집니다.
     
    관리자 코드를 확인 중에 있습니다.
     
    ...
     
    탐사대원 해롤드님의 출입 통제가 해제되었습니다.
     
    도킹된 실루엣 1호로 출입이 가능합니다.
     
    해롤드:...!
     
    당신이 이 제한을 풀어내는 일은 역시 간단합니다.
     
    다행이에요.
     
    이로써 의문이 갔던 실루엣 1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해롤드:(실루엣 1호를 한번...살펴보러 가도 될까?)
     
    시브런:해롤드, 뭘 하고 있는 건가?
     
    그곳을 나서려는 찰나, 시브런이 관리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심리학 판정
     
    해롤드:
    심리학
    기준치: 30/15/6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브런은 왜인지 모르게 조급해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딱딱하게 굳은 시브런의 얼굴 속에서,
     
    의도를 알 수 없는 어떤 걱정이 묻어나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는 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거죠?
     
    시브런은 당신을 붙잡고 이야기합니다.
     
    시브런:이제 내일이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잖나. 그러니 무리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내 부탁을 들어주게.
     
    그의 부탁은 이제 애절하기까지 합니다.
     
    대체 시브런은 당신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거죠?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겁을 먹을 이유는 없을 텐데요.
     
    해롤드:...그냥, 내가 도와 줄 일이 있을까해서... ...괜찮아 시브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 왜 그렇게 걱정하는거야?
     
    시브런:이곳은 지구가 아니니까, 혹시 모를 일이 생기면 즉각 대처할 수 없으니 불안해서 그렇네.(진지한 낯으로 네 손을 붙잡는다.) 다시는 내가 얘기하지 않은 일을 독단적으로 행하지 않기로 해.
     
    해롤드:(잡은 손은 몇 번 만지작 거리며 너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 있는건 어떻게 안거지? ...잠깐 의문이 스치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 시브런, 괜히 걱정끼쳐서 미안해.
     
    시브런:(안심한 표정으로 그제야 손을 놓아준다.) ...일어나자마자 이곳으로 온건가? 배는 고프지 않고? 식사실로 가는게 좋겠군. 따라오게.
     
    해롤드:(그러고 보니 뭔가 먹을 생각도 못하고 여기로 왔지. 네 말에 괜히 제 배를 쓸어본다. 멋쩍게 볼을 긁적이고) 응, 조금 배가고프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경써줘서 고마워. (날 신경써 데리러 온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웃어보였다.)
     
    시브런:(싱긋 웃고 뒤돌아 캄캄한 복도로 발을 내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사는 꾸준히 해줘야 지구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지.
     
    걷다 보면 역시나, 캄캄한 어둠 끝에 식사실이 눈에 보입니다.
     
    오늘도 불을 켤 수 없군요.
     
    라이프워치의 불빛만이 당신과 시브런을 비추고 있습니다.
     
    시브런은 마치 어제의 일을 반복하듯 식탁 위 버튼을 눌러 각종 우주 식량을 올려둡니다.
     
    오늘 메뉴는 튜브에 들어있는 감자수프와 미트볼 통조림,
     
    생식바와 블루베리 주스네요.
     
    해롤드:(주스.. 맛있겠다. 감자 스프를 먼저 들고 한입 쭉, 빨아 들인다. 생식바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주머니에 챙겨 넣고) 그래도 메뉴가 매일 바뀌는구나, 관리하는 사람이 적어서 매일 같은 식량만 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건 조금 다행인걸. (장난스럽게 웃고는)
     
    시브런:솔직히, 혼자 있었다면 그랬을걸세.(씩 웃어보인다.) 자네가 실험체들을 돌보는 걸 보면 그런 짓을 용납할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네.
     
    해롤드:하하, 실험체들을 챙기기도 벅찬데, 시브런 너까지 고루 섭취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면... 네 말대로 엄청 잔소리를 했을거야. (미트볼을 한입 먹고)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걸. 메뉴는... 네 취향인거야?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아냐, 그랬다면 여기 와플이 디저트로 나와있겠지.
     
    시브런:나는 영양이니 뭐니 하는 것은 잘 모르지. 권장 식단 같은게 매뉴얼 한 구석에 있는것을 보았다네. 그런 페이지가 있는건 자네 덕에 처음 알았지만. 와플? 있었다면 한가득 쌓아뒀을거야.
     
    한참 시브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요,
     
    당신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은 딱 1인분 뿐입니다.
     
    식량을 아끼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어제처럼 당신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 혼자 식사 시간을 가진 걸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여러가지 의문을 가지기 무섭게 시브런이 말합니다.
     
    시브런:오늘부터 블랙홀이 열릴 거야. 시작은 아주 작은 크기겠지만. (묘하게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눈빛을 한다.)
    그래도 조종실에 들어가면 다시 밝은 우주를 볼 수 있을걸세. 조금 이따 함께 보겠나?
     
    해롤드:(식량에 대해 물어보려던 찰나 네가 말을 이어 오자 입을 닫고 가만히 네 말을 들었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모습에 그걸로 된걸까, 하는 생각이 들며) ... 좋아. 같이 우주를 함께 보는건 꽤 오랜만인 것 같아서... 어쩐지 기쁜걸.
     
    시브런:지구에 있었을 때는 매일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인데...정작 지구 밖에서는 이토록 기다리는 것이 될 줄은 몰랐네. 기묘한 일이군. 기뻐, 나도 자네와 함께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을 무사히 맞이할 수 있어서...
     
    라이프워치만으로 밝히고 있는 식사실.
     
    동그랗게 난 창문에 희미하게 당신과 시브런의 잔상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 너머는 역시 어두컴컴한 우주뿐입니다.
     
    다시 볼 수 있어요.
     
    저 검은 심연 속에서 우리들을 이끌던 그 빛을요.
     
    그리고 함께 돌아갈 수도 있겠죠.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검은 하루들보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빛이고 희망인 우리의 별로......
     
    식사를 마치면 시브런이 다시금 버튼을 눌러 식탁 위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당신에게 당부하는군요.
     
    시브런:해롤드, 나랑 얘기한 걸세. 내 부탁 외의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로.(옅게 미소짓는다.) 나와 무사히 우주를 보기로.
    방에 가 있으면 조금 이따 부르겠네.
     
    해롤드:저기 시브런, (잠깐 네 소매 끝을 잡아 붙잡는다)
     
    시브런:응? 할 말이 더 있나? (밖으로 나서려다 곧장 뒤돌아 상냥한 표정을 짓는다.)
     
    해롤드:... 아, 음. ..별건 아니고.. 아까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 같길래...(주머니에 챙겨 두었던 생식 바를 꺼내 건내 주고) 미리 식사를 끝내고 온건지, 그냥 입맛이 없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라도 먹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어깨를 한번 찬찬히 쓸어 주고 마주 웃었다.)
     
    시브런:(받아들고 한참 너를 바라본다. 복잡한 생각을 하는가 싶다가도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자네가 오기 전에 미리 식사를 했어. 나는 정말 괜찮네. 지구에서 매일같이 밤샘 연구를 하던 것에 비하면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지. 걱정하지 말게. 이건 자네가 먹는 편이 좋겠어. (다정하기도 하지, 그런 뜻을 담아 생식 바를 다시 손에 꼭 쥐여주고 웃는다.)
     
    해롤드:지금 밤샘 연구를 자랑이라고 말하는거야? ... 역시 수면 시간을 정해두고 감시라도 해야 할까 봐. (게슴츠레 눈을 뜨고 너를 노려본다!) ... 어차피 내 옆에서 볼거라면 같이 먹는 편이 시간도 더 절약 될텐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네가 다시 건내오는 생식바를 받았다.) 네가 괜찮다면... 그런거겠지만.
     
    시브런:천체물리학자의 숙명일 뿐이야. (눈동자를 돌리고 애써 둘러댄다.) 자네를 굳이 깨워서 먹을 수는 없잖나.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서 쉬게. 이따 보도록 하고. (어쩐지 황급한 발걸음으로 식사실을 나선다.)
     
    시브런은 무언가를 당신에게 감추기 급급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저 시커먼 우주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이렇게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던가요?
     
    그도 아니면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혹은 지나치게 알 수 없는 사람이었던가요?
     
    텅 비어버린 시간을 절감합니다.
     
    비록 우주의 시간으로는 단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요.
     
    이 거리감은 분명 둘 사이 공백이 만들어낸 것이겠죠.
     
    식사실에서 빠져나와 정처없이 걷다보면 오늘도 역시나, 라이프워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열 걸음 앞 도킹을 성공한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습니다.
     
    열 걸음 앞......
     
    분명히 아까 관리실에서 출입 통제를 해제했었죠.
     
    보아하니 시브런은 아직 연결통로의 제한을 해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어떻게 하죠?
     
    해롤드:(실루엣 1호로 가본다)
     
    연결통로 근처까지 가게 되면,
     
    연결통로로 이어지는 문 너머에서부터 희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듣기 판정
     
    해롤드: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
     
    안쪽에서 들려오는 건 희미한 말소리입니다.
     
    내용은 들리지 않지만 안쪽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어요.
     
    생존자일까요?
     
    하지만 시브런과 당신을 제외하곤 모두가 실종됐는데요.
     
    어쨌든 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이 중요한 사실이겠죠.
     
    이 너머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시브런은 당신의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은 듯 제한해뒀던 걸까요?
     
    출입을 위해서는 라이프 워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롤드:(라이프워치를 가져다댄다)
     
    음성이 들려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의 정보를 분석 중...
     
    탐사대원 해롤드님의 출입이 가능합니다.
     
    천천히,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문이 열립니다.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던 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아요.
     
    문 너머는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라이프워치의 희미한 불빛만으로도 앞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발자국,
     
    당신이 조심스럽게 발을 떼면......
     
    툭,
     
    무언가가 발치에 걸립니다.
     
    해롤드:...? (발 아래를 살펴본다)
     
    시선을 떨어뜨린 곳엔 연결 통로를 가득 채우는 기계더미들이 쌓여있습니다.
     
    거대한 라디오며 텔레비전, 더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각종 기계가 쌓여 있는가 하면...
     
    잠깐만요, 해롤드.
     
    이게 뭐죠?
     
    사람 형체의 기계들이 그 위에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습니다.
     
    각각 기괴하게 꺾인 관절들, 허공을 바라보는 멍한 눈, 꽉 다문 입술,
     
    전류가 나간 듯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형상을 띈 기계도 있지만
     
    이미 훼손된 것들도 많습니다.
     
    그 와중에도...
     
    당신은 이것들이 무엇을 닮아있는지 깨닫습니다.
     
    그래요,
     
    당신과 함께 실루엣 2호에탔던 몇몇 탐사대원들과 똑같이 생겼어요.
     
    지나치게 차가운 낯으로,
     
    이 깜깜한 어둠처럼 공허한 눈들이 모두 허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감소합니다.
     
    기계가 틈없이 쌓여있는 탓에 안쪽으로까지 더 들어가 볼 수는 없을 듯 하군요.
     
    ?: 여기야, 날 여기서 꺼내줘.
     
    기계더미 속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해롤드:..무, 무슨... 이게 다 뭐야...? (사람이 깔린건가? 눈을 찌푸리고 기계더미를 치워본다)
     
    더미를 치워 살펴보면
     
    사람의 몸을 비슷하게 따다놓은 로봇의 몸과 텔레비전 화면을 연상시키는 기계의 머리가 차례대로 드러납니다.
     
    기계 화면 끝에 금이 간 것을 보면 크게 떨어뜨린 적이 있는 것 같네요.
     
    당신이 손대기 무섭게 팟,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집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 있는 얼굴은.....
     
    장: 설마 윈스턴? 윈스턴 박사인가? 당신 살아있었군. 아주 다행이야.
     
    화면 속에서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는 다름 아닌 탐사대장 장입니다.
     
    마치 카메라를 켜두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당신에게 전송할 영상을 찍은 듯한 모양입니다.
     
    장의 흉상이 보이고 그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며 뻐끔뻐끔 말을 이어갑니다.
     
    어떤 변화도 없는 표정이 지나치게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롤드:......탐사대장님...인가요?
     
    장: 당연하지. 꼴이 이렇게 됐지만 사실이야. 사람의 형태에 가까우니 다행이지.
     
    해롤드:사람의 형태에 가깝다니요? 무슨 말인지...
     
    장: 아, 세상에. 나를 단번에 알아봤으면서 그런 바보같은 질문만 던질건가? 저 기계들보다는 사람의 모양새를 하고 있잖아.
     
    해롤드:(기계? 사람? 분명 목소리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기계잖아요, 지금 어디에 계신거죠?
     
    장: 기계라니? 죽은 자들은 말할 수 없겠지만 봐, 나는 박사에게 말하고 있어. 게다가 윈스턴 박사 당신이 나를 곧장 탐사대장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는 사람이지. 어디에 있냐는 것도 바보같군. 지금 자네 앞에 있지 않나? 지금 보는 게 곧 나야.
     
    아무래도 횡설수설 하는 게, 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해롤드:눈앞에 있다니요. 지금 통신으로... 아니,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정리가 잘 안돼요. (당황스러움에 지끈거리를 머리를 붙잡고)
     
    장: 통신? 지금 보는 것이 곧 나래도. 무슨 일이 있었냐니...흠. 자네를 수면 캡슐로 밀어넣은 일을 말하는건가? 자네가 위험에 빠지지 않게끔 하려는 게 내 목표였지. 아무래도 몸싸움을 하면서 넘어진 탓에 기억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더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야, 어쨌든 큰 위험 속에서 자네를 구하려고 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나. 수면 캡슐 안으로 들어가야만 무사할 수 있는 위험이었거든.
     
    해롤드:몸싸움이라니요? 무슨 이유로?
     
    장: 드 카위퍼 박사 말이야. 우리의 구조 대상 중 하나. 그 박사와 몸싸움을 벌였지. 잘은 모르겠지만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 같더군. 어떻게 해서든 처분하고 싶어 했던 것도 같고. 모두를 망가뜨리고, 전기를 끊고, 이곳에 내다 버렸어! 하, 하. 그 녀석이 간과한 게 있다면, 나는 보조 배터리와 콘센트 모두를 사용하는 기계라는 점이지. 아주 멋진 기계야. 봐, 여기 전기로 근근히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어. 하지만 무슨 일인지 곧장 절약모드로 넘어가버려서 말이야.
     
    실제로 그의 등 뒤로 긴 콘센트가 선체 벽면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치 사람의 동맥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껍고 거대한 콘센트가 두근거리며 움직이고,
     
    장의 가슴에 노란 빛이 깜빡입니다.
     
    전기의 잔량을 표시해둔 것 같아요.
     
    5%의 배터리가 충전된 상태입니다.
     
    장: 윈스턴 박사, 우리는 어쩌면 이곳까지 와서는 안됐을지도 몰라. 드 카위퍼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이곳까지 우리를 불러들였을 수도 있겠지. 그는 악마와 다름 없어.
     
    화면 속 장의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흉상이 덤덤한 낯으로 당신을 응시하며 입을 뻐끔거리지만,
     
    목소리는 왜인지 분노가 일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얼마나 부조화스러운 일인가요.
     
    시브런은 정말 믿어선 안되는 존재일까요?
     
    알 수 없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당신의 시야와 판단을 가로막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실루엣 1호로 이어지는 저 통로 끝에서부터 기계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그 소리는 마치 당신의 머리를 잡아먹기 위해 낮은 고함을 지르는 괴물처럼 느껴져요.
     
    장: 그를 얼마나 믿을 수 있나? 보아하니 그 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탐사대장인 내가, 훨씬 이전 시간에 우주로 간 실루엣 1호의 사람보단 유능하겠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아?
    탐사대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지. 드 카위퍼를 처리해. 그리고 지구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요, 오래 전 이미 우주로 보내져 생사를 알 수 없던 사람.
     
    다시금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그저 당신의 모든 행동을 제한하려는 시브런보단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 온 상사가 더 믿을 만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게다가 이것은 상사인 장의 명령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공백이라는 건 이리도 무섭습니다.
     
    우리가 우주라는 공간에 기대감을 갖다가도 지나치게 겁을 먹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겠죠.
     
    하지만 시브런이 기계들의 전류를 끊어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할까요, 해롤드?
     
    해롤드:.... .. (혼란스러움에 담시 손끝을 잘근 씹다가 콘센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천천히 다가가 전기를 끊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시브런의 부탁을 우선하기로 합니다.
     
    벽면에 연결된 흉측한 콘센트가 일정한 패턴으로 박동하며 전기를 빨아먹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콘센트 끝을 손에 쥐자 장의 절규가 들려옵니다.
     
    장: 잠깐만! 기다려! 진짜로 그걸 끊을 셈이야? 안돼! 제발 나를 살려줘, 윈스턴 박사! 전기가 얼마 남지 않아서 곧바로 절약모드로 넘어갈 거야. 그렇게 되면 정말 손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화면 속 덤덤했던 장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집니다.
     
    그가 이렇게 동요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기나긴 비명과 절규를 뒤로 하고 당신이 콘센트를 뽑으면,
     
    팟 소리와 함께 그의 흉상으로 가득했던 화면의 전원이 나가고 맙니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정적과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기계 소리.
     
    어느새 연결 통로를 가득 채우는 이 기계의 낮은 울음이, 진정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어요.
     
    이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어요, 해롤드.
     
    어쩌면 시브런이 당신을 찾다가 이곳까지 당도할지도 모르니 어서 자리를 뜨는 게 좋겠죠.
     
    연결통로에서부터 점차 멀어져도 멀리서부터, 계속해서,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당신의 등 뒤로 따라붙습니다.
     
    얼마 걷지 않으면 연결통로를 지나 실루엣 2호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이제 어둑한 복도는 어느새 적응이 된 뒤입니다.
     
    주변에 이렇다 할 무언가는 없지만,
     
    라이프워치에서 희미하게 밝혀주는 불빛만으로도 당신은 쉽게 겁을 먹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이곳에서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멀리서부터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제는 이 발자국 소리와 점차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빛이 누구의 것인지 당신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브런:해롤드, 여기 있었군. 어디에 있었던 건가?
    이제 곧 블랙홀의 구멍이 열리기 시작할 거야.
     
    시브런의 휴대용 랜턴이 복도를 밝힙니다.
     
    해롤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조종실을 향해 앞서 가는 시브런의 뒷모습을 보면서요.
     
    장의 말대로 그를 믿으면 안되는 걸까요?
     
    지구로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조종실의 앞까지 당도합니다.
     
    시브런:잠깐 둘러봐도 좋네. 나는 체크할 게 있으니까. 구멍의 크기와 비상 로켓의 크기를 대조해봐야 하거든. 겸사겸사 거리도 계산하고.
     
    시브런은 익숙하게 조종실 의자에 앉아 명령어들을 입력합니다.
     
    실루엣 2호에 있는 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루는걸 보면,
     
    당신이 잠들어 있던 5개월 간 이곳의 모든 시스템을 다루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모양입니다.
     
    조종실 정면 스크린이 보여요.
     
    한쪽에는 보관 사물함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눈에 띄는 사물함은 Nevsky와 탐사대장 Jhang의 사물함이군요.
     
    실루엣 2호의 탐사대원들이 사용하던 것들이에요.
     
    각각의 명패가 달린 보관 사물함은 몇 개는 열려있지만 또 몇 개는 닫혀 있습니다.
     
    해롤드:(정면에 가장 먼저 보이는 스크린을 둘러본다)
     
    그저 새까만 스크린입니다.
     
    관찰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눈부비적...)
     
    자세히 바라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네요.
     
    해롤드:(주변을 좀더 둘러보다가... 장의 사물함을 살펴본다)
     
    잠겨있습니다.
     
    코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해롤드:(곰곰.... 1xx..?를 입력해본다)
     
    삑 소리와 함께 잠금이 해제됩니다.
     
    그의 사물함엔 각종 짐과 책 몇 권이 놓여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책의 제목은 레이 트레이서의 [블랙홀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1권을 넘겨보면 줄을 쳐둔 부분이 있습니다.
     
    해롤드:(... 다른 짐을 한번 둘러본다)
     
    눈에 띄는 것은 없습니다.
     
    해롤드:(네프스키의 사물함을 본다)
     
    마찬가지로 잠겨있습니다.
     
    해롤드:(xx8을 입력한다)
     
    삑 소리와 함께 잠금이 해제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합니다.
     
    한쪽에 잘 정리된 짐가방과 카세트 플레이어 말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습니다.
     
    해롤드:(짐가방을 살펴본다)
     
    짐가방을 조금 뒤져보면 노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탐사대원 네프스키가 적어둔 것 같습니다.
     
    해롤드:(다른건 더 없는지 뒤적)
     
    짐가방에는 더 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해롤드:(카세트 플레이어를 살펴본다)
     
    꽤 아날로그적인 것을 고수하는 탐사대원이었군요.
     
    안쪽에 카세트가 들어있습니다.
     
    카세트를 꺼내보면,
     
    겉면에 [David Browie, Space Oddity]라는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카세트를 넣은 채로 플레이어를 작동시키면 어제 정보실에서 들렸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정보실에서 들었던 노래의 목소리와 이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요.
     
    그러고보니 당신의 사물함을 한참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해롤드:(앗, 자신의 사물함을 찾아 본다, 잠궈뒀던가?)
     
    잠겨있지 않네요.
     
    제대로 잠금장치를 걸어두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문을 열면 짐가방과 사물함 한쪽에 붙여둔 작은 종이 쪽지가 눈에 띕니다.
     
    해롤드:(종이 쪽지를 본다)
     
    사물함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 쪽지입니다.
     
    몇 가지 안내사항이 적혀 있습니다.
     
    1. 사물함에 기존 비밀번호는 라이프워치에 각인된 넘버, 즉 탐사대원 코드넘버로 설정되어 있다.
     
    2. 비상시를 대비하여 해당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는다.
     
    3. 주요 소지품은 반드시 본인이 챙긴다.
     
    해롤드:(짐가방을 뒤적여본다)
     
    당신이 지구에서부터 가져온 짐가방입니다.
     
    안에는 각종 세면도구와 옷가지들이 들어있습니다.
     
    오래된 옷장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듯합니다.
     
    옷가지 안쪽에 불룩 튀어나온 무언가가 눈에 띕니다.
     
    옷가지를 치워보면 그것이 비상용 권총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요, 당신의 탐사대장이 속삭였던 그 소리요.
     
    시브런을 처리하고 지구로 가자고 얘기했던...장의 목소리.
     
    해롤드:...(비상용 권총을 들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게 대체 무슨의미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 ..) 하나도 모르겠어. ..(일단...권총은 챙긴다.)
     
    당신이 그렇게 한참 조종실을 살펴보고 있었을까요,
     
    시브런이 말을 걸어옵니다.
     
    시브런:해롤드, 구멍의 크기가 완전히 커지는 시각을 계산했네.
    우리 기준으로 새벽 세 시군.
     
    슬쩍 바라본 그의 얼굴에는 이제 약간의 안도가 서려 있습니다.
     
    당신이 깨어난 직후부터 쭉 경직된 표정을 짓던 시브런이 아니었나요.
     
    라이프워치에서 깜빡이는 현재 시각은 오후 8시입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면 금방 새벽이 찾아오겠죠.
     
    시브런:이제 온전한 우주를 볼 수 있겠군.(청회색의 눈이 작은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덕에 표정이 한 층 더 누그러진 것처럼 보인다.) 옆에 와서 앉게.
     
    해롤드:응. (네 눈을 잠깐 멍하니 바라 보다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얼마만에 함께보는 우주일까. 기대되는 걸.
     
    시브런:(잠시 말없이 웃고 손을 끌어당겨 잡는다. 반대편 손으로 스크린을 가리킨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구가 가까이서 보이는군. 자네가 실루엣 2호를 타고 왔을 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블랙홀이 생기려 하는 것 같아.
     
    딱딱한 조종실 의자에 앉으면,
     
    정면 넓은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어둠 사이로 희미한 빛이 일렁입니다.
     
    빛은 점차 커지고, 또 커지고,
     
    아주 느릿하지만 확실한 속도로 크기를 키워갑니다.
     
    해롤드, 지구에 있을 때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우주를 기억하나요?
     
    그 눈구멍을 통해 바라본 우주처럼 사위는 여전히 어둑하지만
     
    그 사이로 반짝이는 빛들은 정말이지 당신과 이 우주의 존재를 실감하게 합니다.
     
    희미하게 눈을 뜨면 저기 저 멀리에 푸르른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와요.
     
    그래요 당신이, 아니, 우리가 떠나온 지구예요.
     
    시브런:자네가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 해롤드.
     
    당신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이상하게 모호한 말투군요.
     
    그보다 시브런의 말은 정말 진심일까요.
     
    당신을 통제하려고 하고,
     
    붙잡으면서
     
    시브런이 이루고 싶었던 일은 당신이 지구에 온전히 돌아가는 일뿐인 걸까요.
     
    실루엣 1호에 기계더미들을 쌓고 자신이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기계를 처분해가면서 전기를 아끼고...
     
    이런 사람을 믿어도 되는 일일까요?
     
    점차 커진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빛들,
     
    라이프워치나 손전등을 이용해도 볼 수 없던 더 없이 환한 빛이 시브런의 얼굴 측면을 밝힙니다.
     
    시브런은 여전히 웃고 있습니다.
     
    해롤드, 당신과 시브런을 비추는 이 환한 빛을 길로 삼아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시브런을 죽이라는 장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때뿐이기도 합니다.
     
    해롤드:... ... 아름답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젠 무엇이 진실인지, 내 앞의 당신이 정말로 내가 알던 당신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데. ... 그래도 지금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함께... 돌아가자.
     
    시브런:(눈에는 바로 앞에 펼쳐진 사랑스럽도록 아름다운 우주를 담고, 손에는 그만큼이나 사랑하는 네 손을 담는다. 온갖 생각은 잠시 잊은 듯 그저 황홀함에 잠겨 넋을 놓고 웃는다.) 그래, 아름다워. (그저 그런 단어로만 표현하기는 어려운 벅차오름이 있었으나 말을 아끼고, 네 말을 녹음기마냥 다시금 반복해 중얼거린다.) ...돌아가야지...
     
    해롤드:돌아가면... 뭐부터 해볼까? 역시... 네 수면시간을 정하고, 부족한 영양을 마저 보충하고, 네 건강상태부터 살펴봐야겠어. 그리고... 지구에 적응하는 시간도 다시 가져봐야겠지. ... 많은게 변해있을거야. 네가 지구에 없었던 동안... 많은게 변했을테니까.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면 할 일들을 세아리다가 마지막 말을하며 너를 바라보고 웃었다.)
     
    시브런:(그제야 살짝 고개를 돌려 너를 본다. 네 말에 잠자코 귀를 기울이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할 것이 많겠군. 그래도 지금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걸. 골아픈 일정이 될테니 말이야. (손가락을 접던 손도 마저 끌어다 한데 모아 잡는다.) 걱정은 저 광경 너머로 잠시 넘겨두는 것이 어떻겠나, 윈스턴 박사. (장난스레 딱딱한 호칭을 부르고는 조금은 어색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해롤드:... 나참,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거지? ..하하, (장난스럽게 웃고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너의 시선 끝에 있는 것들이구나, 이리도 아름다운 것을. 이것이 네가 사랑하는 것인거야. ...그것을 어찌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그래, 돌아가서 생각해볼게요. 드 카위퍼 박사님. 대신 돌아가면 아주 지독하게 잔소리를 들을거야. (네가 잡은 손 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이젠 무엇이 진실이어도 상관 없다. 내가 원하는건, 언제까지나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
     
    그렇게 한참 밝은 우주를 보고 있었을까요.
     
    시브런이 당신에게 말합니다.
     
    시브런:(시간을 슬쩍 보고, 못내 아쉬운 얼굴로 말한다.) 감상 시간은 여기까지인 걸로 할까. 막바지 정비를 하려고 하네. 조금 이따 자네 방으로 가겠네. 이제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일 테니.
     
    이 광막한 곳에서의 불안한 하루들도 끝입니다.
     
    정말로, 끝이에요.
     
    후련한 기분이 드나요 해롤드?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해냈습니다.
     
    뭐, 일이랄 것도 없었죠.
     
    그저 시브런의 부탁을 조금 들어주고...
     
    그의 말대로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죠...
     
    여전히 불길하고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습니다.
     
    이제 복도에 난 창문을 통해서도 우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의문스러운 빛이에요.
     
    ...
     
    탐사대원 해롤드님, 수면에서 기상으로 상태가 변경됩니다.
     
    활동 환경을 자동으로 조성합니다.
     
    당신은 문득 눈을 뜹니다.
     
    정비를 마치고 돌아온 시브런과 함께 침대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어렴풋 납니다.
     
    시브런은 줄곧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노라고 얘기했었죠.
     
    마치 그 온기를 느끼려는 듯이 자꾸만 당신에게 파고들었던 밤 아니었나요.
     
    라이프워치의 화면 위로 현재 시각이 표시됩니다.
     
    현재 시각은 새벽 1시 30분.
     
    3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시브런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복도로 나오면 여전히 어두운 선체가 당신을 맞이하지만
     
    이제는 바깥과 연결된 창문으로는 희미한 빛이 일렁거립니다.
     
    라이프워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앞을 분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 천천히 걷다보면 관리실에 옅은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리실 안을 들여다 보면,
     
    관리실 의자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시브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브런을 부르거나 건드려 보아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며칠 동안 피곤했던 걸까요?
     
    정면 데스크 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와 테이프,
     
    작은 수첩과 노트가 놓여 있습니다.
     
    해롤드:(피곤했나 보네...)(컴퓨터를 살펴본다)
     
    비상 로켓의 상태와 실루엣 2호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할 수 있는 컴퓨터입니다.
     
    비상로켓의 상태는 매우 양호합니다.
     
    마치 오늘만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영상 기록은 텅 비어 있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걸까요?
     
    영상 기록을 확인해보려고 하면 컴퓨터에서 오류 메세지를 띄웁니다.
     
    테이프가 비어 있습니다. 테이프를 확인해주세요.
     
    해롤드:테이프..?(옆에 있는 테이프를 보고)
     
    테이프 앞에 적힌 날짜를 확인해보면...
     
    당신이 잠들게 된 직후의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컴퓨터에 넣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해롤드:(넣어 확인해본다)
     
    컴퓨터 속 화면이 잠시 동안 지직거립니다.
     
    화면 조정 중입니다.
     
    잠시 대기해주세요.
     
    딱딱한 기계음이 울려퍼지고 나면 팟,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집니다.
     
    화면에 보이는건
     
    당신과 함께 실루엣 2호에 탔던 탐사대원 중 하나입니다.
     
    탐사대원: 윈스턴 박사, 장의 판단이 옳았어요. 이제는 당신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에요.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죠?
     
    게다가 탐사대원의 얼굴이...
     
    관찰 판정.
     
    해롤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탐사대원의 얼굴을 바라보면 미묘한 기분을 안깁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흉내내고 있는 기이한 마네킹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알 듯 말 듯한 묘한 불쾌감.
     
    이것은 그래요,
     
    실루엣 1호와 연결된 통로에서 마주했던 기계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익숙하다고 여겼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6/28/11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2 감소합니다.
     
    탐사대원: 당신이 깨어나면 이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장이 우리에게 말했어요. 최후로 생존할 사람은 드 카위퍼 박사가 아닌 윈스턴 박사 당신이라고. 당신을 지구로 돌려보내 이 블랙홀에 대해 설명하게끔 해야 한다고요.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기계가 돼요. 블랙홀은 그것을 에너지 삼아 점점 팽창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수면캡슐이라는 기계 안에 들어가 있던 당신만은 무사했다는 거에요.
    윈스턴 박사, 장의 판단이 옳았어요. 이제는 당신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에요.
    당신이 깨어나면 이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장이 우리에게 말했어요. 최후로 생존할 사람은 드 카위퍼 박사가 아닌 윈스턴 박사 당신이라고. 당신을 지구로 돌려보내 이 블랙홀에 대해 설명하게끔 해야 한다고요.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기계가 돼요. 블랙홀은 그것을 에너지 삼아 점점 팽창하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수면캡슐이라는 기계 안에 들어가 있던 당신만은 무사했다는 거에요.
     
    탐사대원이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마치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처럼 보여요.
     
    목소리만은 지나치게 평이해 이질적입니다.
     
    그의 손이, 어깨가, 관절이 기계가 되어 움직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반복합니다.
     
    다시, 또 다시.
     
    마치 이 말만을 전해야 하는 숙명을 떠안은 존재처럼.
     
    말이 되지 않아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요?
     
    그리고 당신만 이곳에서 기계가 되지 않고 생존했다고요?
     
    믿을 수 없는 진실이 성큼 당신의 앞에 다가와 있음을 느낍니다.
     
    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2 감소.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영상 속 그의 머리가 날아갑니다.
     
    날아간 그의 머리에 기괴하게 자리잡힌 기계의 부품들이 보여요.
     
    사람이라면 붉은 피가 튀고,
     
    그의 목뼈며 찢어진 살결이 보여야 할 텐데도.
     
    스파크가 튀는 대원의 뒤로 보이는 건 다름 아닌...시브런입니다.
     
    이내 화면이 꺼집니다.
     
    영상이 끝나고 더 이상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시브런이...당신의 동료를 죽였어요.
     
    아니에요, 탐사대원을 '죽였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요?
     
    그들은 기계가 되었는데?
     
    해롤드:... 시브런, 뭘 한거야... ?
     
    작은 수첩과 노트가 남아있습니다.
     
    해롤드:... (힐끔.. 남은 수첩을 확인한다)
     
    수첩의 종이를 몇 장 넘겨보면
     
    지구와 블랙홀 간의 거리와 비상 로켓의 크기,
     
    블랙홀 구멍의 지름길이를 계산한 수식들이 난잡하게 적혀 있습니다.
     
    몇 장을 더 넘기면 눈에 띄는 메모가 있습니다.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만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 이라는 단어 옆에 물음표가 쳐져 있군요.
     
    해롤드:(노트를 확인한다)
     
    손바닥 만한 작은 노트는 일기인 것 같습니다.
     
    겉면에 시브런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종이를 넘기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천천히 시브런을 바라봅니다.
     
    곤히 잠든 듯한 얼굴에서는 어떤 이상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아요.
     
    한 침대에 누웠을 때 느껴지던 다소 낮은 체온과 희미하게 웅웅거리는 기계소리만이 당신의 머릿속을 채워갑니다.
     
    아, 시브런이 라이프워치를 차고 다닐 수 없는 이유,
     
    왜 우리의 식탁 위에 1인분의 식사만 올라왔는지
     
    모든 의문이 풀려갑니다.
     
    이성 판정.
     
    해롤드:
    SAN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이성 4 감소합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알람을 맞춰두었던 3시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라이프워치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치 시브런에게도 그런 기능이 탑재되었던 것처럼,
     
    무슨 수를 써도 일어나지 않을 듯이 잠들어 있던 시브런이 눈을 뜹니다.
     
    시브런:...해롤드?
     
    그래요, 정말 사람과 똑같군요.
     
    시브런은 당신이 떠나왔을 때의 기술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왜 운이 아주 좋았다고 얘기하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운이 아주 좋았어요.
     
    우리 모두가요.
     
    아니, 정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요?
     
    ...
     
    시브런이 희미하게 웃습니다.
     
    당신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듯해요.
     
    시브런:지구로 갈 준비는 끝났나, 해롤드?
     
    해롤드:... .. 결국 넌 돌아오지 못하는거구나. ...차라리, 처음부터 그리 말하지 그랬어. 처음부터 당신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주먹을 꾹 쥔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아, 바보 같이 무슨 희망을 품었던 건지.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
     
    시브런: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겠나? (씁쓸하게 하하,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네 앞에 선다.) ...해롤드. 나는 시브런 드 카위퍼야. 자네가 알고 있는 시브런이라고. 다만...조금 문제가 생긴 것 뿐이지.
     
    해롤드:... 정말로 네가 맞아? 난 이제 모르겠어. ... 널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내가 여기서 널 완전히 부정해버린다면, 그건 네게 상처가 되고 마는 걸까? ... (제 앞에서 네게 손을 뻗어 손끝을 가볍게 잡았다. ... 제 체온을 나누어 주기라도 하듯) .... 같이 돌아갈 수는 없는걸까?
     
    시브런:(가볍게 잡은 손을 애타게 바라듯이 조금 더 힘주어 꾹 잡는다. 그 온기를 갈구하는 듯이.) ...자네는 다정하군. 내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야.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만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어. 나는 시브런이네, 그것을 부정하지는 말아줘. 그러나 살아있느냐 묻는다면...그것은 답하기 힘들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살아있는 사람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이야.
     
    해롤드:스스로가 너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거야, 분명, 살아있는거라고 생각해. 이건 내가 정할 수 있는게 아니야. 안그래? ... 부정하지 않을게. 당신은 언제까지고 시브런이고, 내 곂에 있을거야. 그렇지? .... 돌아가자. 스스로가 살아있다고 인정한다면... 그건 살아있는거야. 타인으로서 존재하려고 하지마 시브런, 네가 네 존재를 자각하면 그걸로 된거야.
     
    시브런:(손이 옅게 떨려 더 힘을 주어 네 손을 잡는다.) 나는 저 지구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 이제 나의 생각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해롤드:살아갈 수 있어. 걱정마 시브런. 모두가 너를 반길거야.... 그런 걱정은 하지마. (떨리는 네 손을 끌어 당겨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괜찮아. 시브런.
     
    시브런:(천천히 살아있는 너를 느끼며, 자신과의 간극을 잠시 한켠에 치워둔다. 알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오간다. 살아나갈 수 없다, 이미 기정사실화된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면서도 마지막으로 쥐었던 희망을 바라본다. 새로운 희망을 찾았을까, 복잡한 생각 속을 오가며 더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그 손을 내린다.) ...가지. 시간이 다 된 것 같네.
     
    ...
     
    우리는 부조종실로 향합니다.
     
    공터처럼 커다랗게 마련된 곳에 비상 로켓이 있습니다.
     
    로켓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 형태를 살펴보면 로켓보다는 제트기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시브런은 아주 익숙하게 당신의 코드번호를 입력하고 기계와 당신의 라이프워치를 연결합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비상 로켓과 라이프워치가 연결되었습니다.
     
    계기판에 일제히 불이 들어옵니다.
     
    시브런이 제트기와 실루엣 2호에 연결된 전기선들을 하나하나 해제합니다.
     
    두 개의 좌석 중 운전석은 당신이 앉게 되겠죠.
     
    시브런이 당신을 끌어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워줍니다.
     
    시브런:자네가 무사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쁘네. 해롤드.
     
    무슨 말이죠?
     
    당신은 문득 느낍니다.
     
    지구로 돌아간다는 가정 안에 주체 중 시브런은 없다는 사실을요.
     
    시브런은 해롤드 당신 혼자만 지구로 보낼 생각인 거에요.
     
    그래요, 시브런은 애초에 지구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요.
     
    미약하게 가동되는 엔진이 당신이 앉은 좌석을 통해 진동합니다.
     
    전력을 엔진으로 변환합니다.
     
    미리 입력한 시간에 맞춰 비상 로켓이 작동됩니다.
     
    정면 스크린이 거대한 기계음을 내며 좌우로 갈라집니다.
     
    늘 어둡기만 했던 이 광활한 우주에서 다시금 빛과 조우하는 시간입니다.
     
    별들의 빛을 등진 시브런의 얼굴을 바르게 쳐다볼 수 없어요.
     
    이 드넓은 우주를 밝히기 위한 빛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요.
     
    비상 로켓이 가동됩니다.
     
    궤도, 확인되었습니다.
     
    목적지, 확인되었습니다.
     
    시브런:내가 지구로 돌아가도 괜찮은지에 대해 오래 생각했네.
     
    지구가 가진 기술력으로 안드로이드인 시브런이 온전히 적응하며 사는 삶은 보장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가 가진 불안함, 막막함, 괴로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이 우주에서 느끼던 공포를,
     
    푸른별에서 다시금 느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두고 가는 선택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우주에서 당신의 지구 귀환을 간절히 바라온 이가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자, 해롤드.
     
    당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세요.
     
    당신이 얼마나 필요한지.
     
    저 지구에서 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또...
     
    당신을 기다려왔는지.
     
    시브런:정말, 내가 돌아가도 괜찮은걸까.
     
    해롤드:... 당연하지. 괜찮아. 뭐가 두려운거야? ...네 곁에 있을게. 그러니 두려워 하지마.
     
    시브런:어린 아이 같은 소리를 해도 괜찮겠나. 이기적이고, 떼 쓰는 것 같지만...끝까지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해주게. 부디...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줘.
     
    해롤드:물론. 네가 어린아이 처럼 굴어도 괜찮아. 너 답지 않게 굴어도 괜찮아. ... 애초에 너 다운게 뭘까? ...그냥 네가 하고 싶다면. 무엇이든 해버려.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는 거야. 네가 어떤것을 원해도 그 곁에서 함께 할테니까.
     
    시브런:자네의 그 말이...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꼭 이런 말이 아니더라도. 자네의 모든 말이, 모든 행동이, 그리고 자네가...(어쩐지 체념한 것 같은, 그러나 여지껏 고집해온 이곳에 남겠다는 생각의 체념을 담아 허탈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지구에 가면 할 것이 많겠군. (네 얼굴을 다정함을 담아 잠시 바라본다. 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타인으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었지만 사랑으로서 존재할 수는 있잖나. 그 말은 지구의 것으로 아껴두어야지. 이토록 사랑하는 우주 앞에서 말하기에는 무색한 말이니. 조금 더 특별한 사랑으로 말할 수 있도록.) 할 말도 많겠고. (할 수 있다면, 작게 덧붙인다.)
     
    해롤드:... 응. 뭐든지 들어줄게. 하루종일 이야기해도 들어줄 수 있어. 네가 지구에 돌아가 어떤 얘기를 해줄지 정말 궁금하거든. (그리곤 조금 아이같이, 어쩐지 기대되는 미래가 떠올라 웃음지었다. 아아, 당신과 함께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도 할 수 있으리라. 무엇이 진실인지 모두 깨달아도 변한 것은 없었다. 당신은 언제나 처럼 당신으로서 내 앞에 존재 하지 않는가. 돌아가자. 난 너와 함께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왔고, 이젠 우리가 함께 돌아가는 것 만이 남았다.) 가자. 시브런.
     
    지구는 정말 인간의 것일까요.
     
    이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 함께이기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들은 두고 가지 않기로 해요.
     
    당신의 옆자리는 이렇게 시브런을 위해 비워져 있으니까요.
     
    목적지는 지구, 지구입니다.
     
    3
     
    2
     
    1
     
    몸이 떠오르듯 탈출 로켓이 지면에서 떨어집니다.
     
    그저 까맣기만 하던 유리창엔 이제 당신이 줄곧 보아오던 우주가 채워져요.
     
    때때로 떨어지는 유성들,
     
    너울대는 푸른 빛,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인 듯 멀고도 가까운 지구.
     
    이 새까만 우주에서 길을 찾듯 주변을 밝히는 인류의 조명,
     
    둥근 지구의 선을 따라 우주를 비추는,
     
    여전히 찬란한 태양을 봐요.
     
    해롤드,
     
    이 아득한 우주에서 우리는 감히 살아있습니다.
     
    먼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들이 보여요.
     
    지구가 점차 가까워져 옵니다.
     
    선체에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탐사대원 해롤드님, 이 푸른 별에서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가속도가 붙으며 선체가 착륙하려는 조짐이 보여요.
     
    아, 지구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검은 우주를 채우던 그 별들처럼
     
    지구의 하늘은 온통 하얀 눈으로 빼곡해요.
     
    외로움을 가진 이를 버리지 않는 것.
     
    우리는 사람다움을 잃지 않기로 합니다.
     
    비록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의 두 눈은 결국 길게 갈망해왔던 것을 담게 되죠.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브런의 두 눈을 보세요.
     
    그는 무엇을 갈망해왔을까요?
     
    시브런:나는 이 푸른 별이 그리웠네.
    이 따뜻한 빛과...
    나를 사람으로 여겨줄 누군가가 필요했어.
    ...
     
    ...
     
    ...
     
    시간은 무참하게 흐릅니다.
     
    오늘도 지구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블랙홀이 포착되었습니다.
     
    그것은 점차 지구와 가까워졌고 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는 블랙홀에 잡아먹힐 것이며 그것이 인류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하지만 걱정은 없습니다.
     
    시브런이 계산한, 블랙홀과 지구가 가까워 지는 속도, 그리고 거리,
     
    블랙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드로이드인 자신의 프로그램 수식과 설계까지 시브런이 인류에게 완벽히 전달해준 덕분에
     
    우리는 그 멸망의 순간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치직...치직...
     
    좋아요, 이번 질문은 치지직...
     
    윈스턴 대원님에게 드릴게요.
     
    왜 다시 우주로 가시나요?
     
    당신이 앉은 좌석이 요동칩니다.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이어져요.
     
    스크린 너머로 사람들이 출발을 지시하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천천히 나아가는 선체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산악인에게 왜 에베레스트의 정상으로 가느냐는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죠.
     
    산악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곳에 산이 있기에.
     
    당신은 옆을 바라봅니다.
     
    몸이 떠오르듯 선체가 지면에서 떨어지면
     
    우리는 쉽게 궤도를 벗어나 우주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시브런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당신을 마주합니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요?
     
    다시 우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 긴장감, 기쁨...
     
    그의 눈과 표정 속 이제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두 눈에 당신이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갑니다, 그곳에 우주가 있으니까.
     
    안내음이 울려퍼집니다.
     
    핸들을 잡아주세요.
     
    곧 탐사 로켓이 가동됩니다.
     
    3
     
    2
     
    1
     
    탐사대원 해롤드님, 탐사대원 시브런님.
     
    이 광활한 우주에서 당신들의 행복을 빕니다.
     
    시브런 생환 / 해롤드 생환
     
    End 5. 그곳에 우주가 있음에
     
    ---
     
    수고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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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우주를 좋아합니다. 뜬금없는 고백 같네요. 이건 전부 시그마 탓이에요. 과학을...좋아는 하지만 일단 전공은 미술인 학생인데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 이외의 우주의 미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죠. 비록 가상의 캐릭터라 한들 자신의 미학을 설파하고 그것에 온 생애를 던져 바치는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가 설파하는 미학에도 차차 잠기는 것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네요. 역시 우주가 짱이야. 이런 빈약한 어휘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미지의 존재이며 알 수 없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이것은 우주임과 동시에 시그마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이 시나리오의 kpc 역할이건 원작이건... 저는 이렇게 원작과 들어맞는 시나리오를 사랑한답니다. 그리고 우주에 취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뭔가 더 주절거릴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쓰읍...까먹었네 글 쓰는 능력이 퇴화해서+졸려서 헛소리만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하여튼 우주 뽕 제대로 채워주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시브런이 이래서 우주를 사랑하는겁니다 여러분 그리고 나는 그런 시브런과 우주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아 참 시나리오에 나오는 NPC 이름은 원래 남옥과 노바였지만 세션에서는 호라이즌 달 기지에 있는 해롤드의 동료들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원작의 그들도 살기를 갈망했고 마찬가지로 윈스턴 박사가 살기를 갈망했을텐데 말이죠. 원작 스토리 더 풀렸으면 좋겠어요....................

     

    여담으로 저는 이 시나리오 처음 까볼 때 엔딩 제목 순서대로 읽고 눈물이 찔끔 났어요. 꼭 한 번씩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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